'AI가 다 해주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

임원 강의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AI가 다 해주는데, 굳이 사람이 문제를 풀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보고서 초안, 코드, 디자인 시안, 시장 조사 요약이 모두 몇 분 안에 나오는 시대니까요. 그러나 현장에서 AI를 본격적으로 써본 조직일수록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AI가 잘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창의적 문제해결의 가치는 줄지 않고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입니다. AI는 답을 빠르게 내지만,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는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Group of young professionals collaborating in a bright office setting.
Group of young professionals collaborating in a bright office setting.


AI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

AI의 능력을 정확히 이해하면 기업이 어디에 사람을 배치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AI가 빠르고 잘하는 영역은 이미 정의된 문제입니다. 데이터 요약, 문서 생성, 코드 작성, 번역, 분류, 패턴 인식. 이 영역의 평균 품질은 빠른 속도로 사람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반면 AI가 여전히 어려워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 문제의 재정의: 매출 정체를 영업 문제로 볼지 고객 가치 문제로 볼지 결정하는 일
  • 모순의 처리: 품질과 비용, 속도와 안정성처럼 상충하는 요구 사이의 양립 해법 설계
  • 맥락 가중치: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조직의 역사·관계·정치를 고려한 현실적 선택
  • 결과의 책임: 의사결정의 책임을 지는 일은 본질적으로 위임 불가

이 영역에서 사람의 자리는 좁아지는 게 아니라 재배치됩니다. 실행은 AI가, 정의와 판단은 사람이.

생존을 가르는 변수는 '실행 속도'가 아니다

과거 10년의 경쟁 변수는 실행 속도였습니다. 같은 아이디어라도 먼저 만들고 먼저 출시한 쪽이 이겼습니다. AI가 실행 비용을 0에 가깝게 떨어뜨리는 지금, 이 변수의 위상이 바뀝니다. 모든 경쟁자가 동일하게 빨라지면, 속도 자체는 더 이상 차별점이 아닙니다.

대신 부각되는 변수가 있습니다.

  •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정확도
  • 왜 지금 만들어야 하는가의 타이밍 판단
  • 다른 모두가 놓친 문제를 발견하는 감수성

이 셋은 모두 문제 정의의 영역입니다. AI를 도구로 잘 쓰는 회사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AI를 어디에 쓸지를 잘 정하는 회사가 살아남습니다. 같은 도구가 모두에게 주어진 시장에서, 격차는 도구가 아니라 질문에서 벌어집니다.

창의적 문제해결, 직관이 아니라 절차

'창의'라는 단어가 종종 오해를 부릅니다. 번뜩이는 영감, 천재적 발상, 자유로운 분위기. 실제 현장의 창의적 문제해결은 그 반대쪽에 가깝습니다. 절차화된 사고입니다. 트리즈가 수십만 건의 특허 분석에서 추출한 40가지 발명 원리와 모순 해결 매트릭스는 정확히 이 지점을 다룹니다. 운에 맡기던 발상을 반복 가능한 절차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조직에 이 절차가 자리 잡으면 두 가지가 달라집니다. 첫째, 발상이 특정 개인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신입 사원도 동일한 도구로 문제를 분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AI와의 협업 품질이 올라갑니다. 사람이 문제를 정확히 정의해 줄수록, AI는 더 정확한 답을 돌려줍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표현 뒤에 숨은 본질도 결국 문제 정의의 정밀도입니다.

이트리즈가 트리즈 기업특강AI 실무 적용 과정을 함께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과정은 별개로 보이지만 같은 축 위에 있습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 위에 AI라는 실행 도구가 얹힐 때, 조직의 산출량이 비로소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Sticky notes on a whiteboard during a creative brainstorming session in an office.
Sticky notes on a whiteboard during a creative brainstorming session in an office.


'AI 도입'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흔한 이유

2024~2025년 사이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본 곳은 일부입니다. 실패한 조직을 들여다보면 패턴이 비슷합니다.

  • 도구는 도입했지만, 문제 정의 능력은 그대로
  •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할 사람이 없음
  • 기존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뿐, 무엇을 멈출지 못 정함
  • 부서별 도입은 됐지만, 문제를 가로지르는 시야 없음

공통 원인은 분명합니다. AI는 실행 레이어를 강화했는데, 정의·판단 레이어는 그대로 둔 것입니다. 자동차의 엔진만 갈고 운전자는 교육하지 않은 셈입니다.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은 이 운전자 교육에 해당합니다. AI 도입의 ROI를 결정하는 변수는 결국 사람의 사고 품질입니다.


Close-up of a smartphone displaying ChatGPT app held over AI textbook.
Close-up of a smartphone displaying ChatGPT app held over AI textbook.

조직 차원에서 키울 수 있는가

흔히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으로 다뤄지지만, 기업 현장의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적절한 도구·언어·반복 훈련이 주어지면 평균적인 실무자도 6~12개월 안에 문제 정의의 해상도를 눈에 띄게 끌어올립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공용 언어: 부서가 달라도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분해할 수 있는 사고 도구
  • 반복 기회: 실제 업무 문제에 도구를 적용해 보는 작은 사이클의 누적
  • 피드백 구조: 정답 채점이 아니라, 정의의 질에 대한 코칭

이트리즈가 14년간 삼성·LG·POSCO를 포함한 500여 기관에서 운영해 온 과정의 핵심 설계도 이 세 가지를 축으로 합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조직 안에 언어가 남는다는 점이 일회성 교육과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Women creating abstract art on glass with paint strokes, captured with selective focus.
Women creating abstract art on glass with paint strokes, captured with selective focus.

정리하며

AI가 다 해주는 시대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AI는 실행을 가져갑니다. 그러나 무엇을 풀 것인지를 결정하고, 모순을 양립시키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은 사람에게 더 무겁게 남습니다. 창의적 문제해결은 그래서 사라지는 역량이 아니라, 생존을 가르는 변수로 올라온 역량입니다. AI를 가진 회사가 이기는 게 아니라,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회사가 이깁니다. 그 질문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옵니다.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