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린더를 지운 회사
2023년 1월, 쇼피파이는 직원들의 캘린더를 열었다. 그리고 정기 회의를 통째로 삭제했다. 세 명 이상이 모이는 반복 회의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수요일에는 아예 회의를 잡을 수 없게 막았다. 50명이 넘는 큰 회의는 목요일 한 시간대로 몰아 두었다. 몇 주 뒤, 최고운영책임자(COO) 카즈 네자티안은 그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32만 2천 시간의 회의를 지웠습니다."
"We deleted 322,000 hours of meetings."
— Kaz Nejatian, Shopify COO (KCLU/NPR, 2023)
상식대로라면 이 지점에서 무언가 무너졌어야 한다. 회의를 없애면 정보가 끊긴다. 결정이 늦어진다. 사람들이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된다. 우리가 회의를 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그런데 쇼피파이가 32만 시간 자리에서 되찾은 건 시간만이 아니었다. 회의를 덜 하게 되자, 협업은 나빠지긴커녕 오히려 좋아졌다.
이건 '회의를 잘 줄이면 손해가 크지 않더라'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의를 곧 협업이라고 여기던 계산 자체가 틀렸다는 이야기다.
32만이라는 숫자가 한 일
회의는 왜 그렇게 쉽게 늘어날까. 잡는 사람에게는 회의가 공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30분에 남의 30분 아홉 개를 더 얹어도, 청구서는 어디로도 날아오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주당 평균 3~4번 회의에 참석하지만 그중 절반 가까이를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 babywhale, 「효율적인 회의 문화 만들기」
절반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데도 회의는 줄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는 그 낭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쇼피파이가 한 일의 핵심은 회의를 금지한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던 낭비를 하나의 숫자로 꺼내 보인 것이다. 흩어져 있던 개인의 30분들을 전부 더했더니 32만 2천 시간이었다. 이후 쇼피파이는 참석자 규모에 따라 회의 비용이 산출되는 계산기를 도입했다고 보도됐다. 회의를 예산 항목처럼 만든 셈이다.
재는 방식을 바꾸면 잡는 손이 멈칫한다. '이 30분짜리 회의가 열두 명에게는 여섯 시간'이라는 문장이 캘린더에 뜨는 순간, 습관처럼 누르던 반복 예약 버튼의 무게가 달라진다.
협업은 어디서 좋아졌나
회의가 빠진 자리를 채운 건 침묵이 아니었다. 그 자리는 문서와 짧은 비동기 메시지가 채웠다. 그리고 '이건 회의 안 잡아도 되겠는데'라는 판단이 채웠다. 쇼피파이만의 우연이 아니다. MIT 슬론은 76개 기업이 '회의 없는 날'을 도입한 뒤를 추적했다.
"자율성·소통·몰입·만족도가 모두 높아졌고, 그 결과 마이크로매니징과 스트레스가 줄면서 생산성이 올랐다."
"autonomy, communication, engagement, and satisfaction all improved, resulting in decreased micromanagement and stress, which caused productivity to rise."
— MIT Sloan Management Review, 「The Surprising Impact of Meeting-Free Days」 (2022)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소통(communication)'이다. 회의를 없앴는데 소통 점수가 올랐다. 모여 앉은 시간이 줄었는데 서로 더 잘 통했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하던 계산의 정체가 드러난다. 회의는 협업의 본체가 아니라, 다른 조율 수단이 실패했을 때 치르는 정산서였다. 문서로 남길 수 있는 걸 굳이 말로 확인하려고, 비동기로 끝낼 걸 굳이 동기로 붙잡으려고 우리는 회의를 연다. 그러니 회의가 많다는 건 협업이 활발하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협업이 다른 곳에서 새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정확히 반대로 가는 회사들
이 이야기가 3년 전 한 회사의 실험으로 끝났다면, 흥미로운 사료일 뿐이다. 문제는 오늘이다. 규모 큰 기업들이 지금 정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고 있다.
2025년 1월 2일, 아마존은 주5일 사무실 복귀를 시행했다. 명분은 '협업'이었다. 얼굴을 맞대야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오가고, 팀이 더 끈끈해진다는 논리다. 아마존만의 일이 아니다. 상당수 경영진이 대면과 회의의 양을 협업의 증거로 되돌리는 중이다.
두 진영은 같은 단어를 두고 정반대로 움직인다. 쇼피파이는 협업을 위해 회의를 지웠다. 아마존은 협업을 위해 사람을 불러 모은다. 어느 쪽이 옳은지 이 글이 판결할 수는 없다. 다만 한쪽은 결과 지표(소통·몰입·생산성)를 근거로 댄다. 다른 한쪽은 대체로 형식 지표(모인 시간·출근 일수)를 근거로 댄다. 그리고 협업이라는 결과를, 회의·출근이라는 원인의 양으로 재려는 관성만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럼 지울 회의를 어떻게 고르나
쇼피파이처럼 캘린더를 통째로 밀 권한은 대부분에게 없다. 하지만 렌즈 하나는 빌려 올 수 있다. 다음 반복 회의를 볼 때, '이건 협업인가'라고 묻지 마라. 회의는 원래 협업처럼 보이니까. 대신 이렇게 물어라. 이걸 없애면 무엇이 실제로 멈추는가. 답이 '멈추는 게 없다'거나 '문서 한 장이면 된다'라면, 그 회의는 협업이 아니었다. 협업이 새던 자리를 막아 두던 반창고였을 뿐이다.
한 개만 골라 보자. 참석자 수에 회의 시간을 곱해 한 달 소모 시간을 계산하고, 2주 동안 없애 보라. 그리고 무엇이 진짜로 무너지는지 관찰하면 된다.
산술적으로 말하면, 32만 2천 시간은 어느 위대한 결단의 크기가 아니라 1만여 명이 각자 되찾은 서른 시간 남짓의 합일 뿐이다. 당신 몫은 이미 이번 주 캘린더 안에 들어와 있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NPR (2023). Shopify deleted 322,000 hours of meetings. Should the rest of us be jealous? KCLU. https://www.kclu.org/economy/2023-02-15/shopify-deleted-322-000-hours-of-meetings-should-the-rest-of-us-be-jealous
- Laker, B., Pereira, V., Budhwar, P., & Malik, A. (2022). The Surprising Impact of Meeting-Free Days. MIT Sloan Management Review. https://sloanreview.mit.edu/article/the-surprising-impact-of-meeting-free-days/
- babywhale. 효율적인 회의 문화 만들기. https://www.babywhale.io/blog/efficient-meeting-culture
- McGregor, J. (2023). This Company Is Canceling All Meetings With More Than Two Employees To Free Up Workers' Time. Forbes. https://www.forbes.com/sites/jenamcgregor/2023/01/03/shopify-is-canceling-all-meetings-with-more-than-two-people-from-workers-calendars-and-urging-few-to-be-added-back/
- Valinsky, J. (2023). Shopify calculator shows how much unnecessary meetings really cost the company. CNN Business. https://www.cnn.com/2023/07/12/tech/shopify-meeting-cost-calculator
- NPR (2025). This is the day Amazon's 'return to office' policy takes effect. NPR. https://www.npr.org/2025/01/02/nx-s1-5237654/this-is-the-day-amazons-return-to-office-policy-takes-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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