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더 잘하는데, 왜 굳이 제가 생각해야 하죠?"
요즘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건 우리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검색창을 여는 대신 챗봇에게 묻습니다. 초안을 붙들고 씨름하는 대신 완성된 문장을 받아 옵니다. 긴 글을 읽으며 고민하는 대신 요약본만 훑습니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벌어집니다.
편리한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AI에게 기대다 보면, 정작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조금씩 줄어드는 게 아닐까요?
최근 한림대학교 최승락 교수(인문학부 철학전공)가 바로 이 불안에 정면으로 답하는 논문을 내놓았습니다. 제목은 「생성형 AI 시대,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인지적 외주화의 위험과 교육적 해법」입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뜻밖이었습니다.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었거든요.
편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 숫자로 본 현실
먼저 변화의 속도가 놀랍습니다. 콘트랙터와 레이에스(Contractor & Reyes, 2025)가 미국의 한 명문대를 추적해 보니, 2023년 봄 이전만 해도 학업에 AI를 쓰는 학생은 10%가 채 안 됐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그 비율이 80%를 넘어섰습니다.
이게 얼마나 빠른 건지 감이 잘 안 온다면, 다른 수치와 나란히 놓아 보면 됩니다. 같은 연구가 인용한 미국 전체 노동자의 AI 사용률은 40%, 성인 전체로 보면 23% 수준입니다. 대학생들의 확산 속도가 그 두 배를 훌쩍 넘긴 셈입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처음 퍼지던 때보다도 빠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입니다.
흥미로운 건 학생들이 스스로 느끼는 효과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학생의 61.2%는 공부를 돕고 피드백을 받으려고 AI를 썼습니다. 41.9%는 에세이를 쓰거나 문제를 푸는 일을 아예 '자동으로' 처리하려고 썼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적에 관해서는, 55.4%가 "별 영향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과제를 해내는 과정은 확실히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오른다는 확신은 없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수행은 좋아졌지만 학습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는 신호입니다.
'AI 인지적 외주화'라는 함정
이 현상을 설명하는 열쇳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AI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입니다. 말은 조금 딱딱한데 뜻은 단순합니다. 기억하고, 판단하고, 정보를 따져 보는 '머리 쓰는 일'을 바깥 도구에 떠넘기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곱셈을 계산기에 맡겼습니다. 이제는 '생각' 그 자체를 AI에게 맡기기 시작한 것이죠.
문제는 여기서부터 길이 갈립니다. 저자는 진보를 두 갈래로 나눈 피터 틸의 비유를 빌려 옵니다. 그가 『제로 투 원』에서 나눈 것처럼, 교육에도 두 방향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도구를 써서 주어진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수평적 생산 능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사고를 깊게 만드는 수직적 성장입니다.
생성형 AI는 이미 있는 지식을 빠르게 복제하고 재조합하는 일, 즉 수평적 생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학습자 안에서 일어나는 질적인 도약, 곧 수직적 성장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계산기가 아무리 빨라도 나 대신 수학적 사고력을 키워 주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힌트는 +127%, 정답은 시험에서 -17%: 터키 고등학교의 반전 실험
이 주장을 가장 극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와튼스쿨의 바스타니 등(Bastani et al., 2025)이 진행한 대규모 실험입니다. 2023년 가을, 터키의 한 고등학교에서 9~11학년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이미 배운 수학을 복습하는 시간에 GPT-4를 투입하고,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 통제 집단 — AI 없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부
- GPT 베이스 — 정답과 풀이 전체를 곧바로 받아 봄
- GPT 튜터 — 정답 대신 힌트와 소크라테스식 질문만 받아 봄
연습 단계의 성적은 눈부셨습니다. 정답을 통째로 받은 GPT 베이스 그룹은 +48% 향상됐습니다. 힌트만 받은 GPT 튜터 그룹은 무려 +127%나 뛰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AI를 완전히 치우고 혼자 힘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자, 결과가 뒤집힌 겁니다. 연습 내내 AI에 전적으로 기댔던 GPT 베이스 그룹은, AI를 아예 안 쓴 통제 집단보다 오히려 17%나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힌트만 받았던 GPT 튜터 그룹은 통제 집단과 통계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수준을 지켰습니다.
대화 기록을 들여다보니 이유가 보였습니다. GPT 베이스 그룹 학생들은 문제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고 답을 요구하는 방식이 유독 많았습니다. 스스로 푸는 '척'만 했을 뿐, 개념은 자기 안에 남지 않았던 겁니다. 당장은 답을 아니까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를 '능숙함의 환상(illusion of competence)'이라 부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가 정답을 대신 내줄 때가 아니라, 힌트로 생각을 이끌어 줄 때에만 학습이 지켜졌습니다. 이 대비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합니다.
AI를 믿을수록, 가장 마지막 판단부터 내려놓는다
이건 교실 안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실 밖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거를리히(Gerlich, 2025)는 나이와 학력이 제각각인 666명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AI를 자주 쓸수록 인지적 외주화는 강해졌고(상관계수 r=+0.72), 그와 나란히 비판적 사고 수준은 낮아지는 경향(r=−0.68)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건 상관관계를 본 연구라서, 무엇이 원인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뼈아픈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가장 크게 약해진 게 단순 암기력이 아니라, 출처를 가려내고 정보가 맞는지 검증하는 '소스 평가' 능력(-0.494)이었다는 점입니다. 하필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먼저 무뎌진 셈이니까요.
리 등(Lee et al., 2025)의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지식노동자 319명이 실제로 AI를 쓴 사례 936건을 뜯어봤습니다. 그랬더니 AI를 신뢰할수록 지식·이해·분석·종합·평가 전반에서 비판적 사고에 드는 노력이 줄었다고 느꼈습니다. 그중에서도 줄어든 폭이 가장 큰 영역이 '평가'였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AI를 쉽게 믿을수록, 인간은 가장 끝에 남겨 두어야 할 판단 기능부터 먼저 손을 놓기 시작합니다. 다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평소 자기 일을 되돌아보는 습관이 강한 사람은 AI를 쓰면서도 비판적 사고를 지켰습니다. 결국 도구가 아니라 태도가 갈랐다는 뜻입니다.
'먼저 온 미래', 바둑이 보여준 것
저자가 가장 공들여 분석한 사례는 뜻밖에도 바둑입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바둑계가 겪은 변화가, 다른 분야가 곧 마주할 미래의 축소판이라고 본 것이죠.
최석웅 등(Choi et al., 2025a)은 방대한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2015~2019년 프로기사 1,241명이 둔 24,973국, 749,190수가 대상이었습니다. 결과는 뚜렷했습니다. AI 바둑 프로그램이 공개된 뒤, 기사들의 착수 정확도, 즉 '수의 질'은 (AI 최선책과의 격차를 기준으로) 약 30.5% 향상됐습니다. 오류는 33.7% 줄었고, 치명적인 실수는 21.9% 줄었습니다. AI가 실제로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 훌륭한 스승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 혜택이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갈림길은 흡수 역량(absorptive capacity)이었습니다. AI가 내놓은 수의 '의미'를 해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말합니다.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2017년부터 AI를 공부에 들여왔지만, 준 수를 그냥 베끼지 않았습니다. 다른 변화도까지 함께 짚어 보며 "왜 이 수가 좋은가"를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반대로, 성능이 낮았던 이전 세대 프로그램(크레이지 스톤)은 아무리 곁에 두어도 이렇다 할 향상을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오래된 말이, AI 시대에 더 냉혹한 현실이 된 것이죠.
어두운 이면도 있습니다. 같은 연구진의 후속 분석(Choi et al., 2025b)을 보면, AI가 들어온 뒤 프로기사들의 초반 포석은 다양성이 줄고 비슷한 패턴으로 수렴했습니다. 이해하기보다 모방하기 시작하면, 사고 전체가 하나의 틀로 획일화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 극단을 보여준 사건이 있습니다. 2019년, 이세돌 9단은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목적의 상실"을 이유로 은퇴했습니다. 늘 나보다 더 나은 수를 아는 존재 앞에서는, 스스로 수를 궁리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잃습니다. 이건 단순한 인지적 외주화를 넘어선 장면입니다. 내적 동기를 잃어버린 학습자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것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나
저자의 답은 명쾌합니다. "AI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라는 이분법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라는 겁니다. 대신 그는 학습을 여섯 영역으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다른 원칙을 제안합니다.
- 기초 지식 습득 — 강력한 절제. 정답을 주는 AI는 빼고, 힌트·질문형 도움만 제한적으로 씁니다.
- 반복 과업 — 조건부 활용. 이미 숙달한 사람에게는 '시간 절약'이 되지만, 미숙한 사람에게 '학습 대행'이 되어선 안 됩니다.
- 아이디어 발산 — 하이브리드. 먼저 내 초안을 만든 뒤, AI로 대안과 반례를 넓힙니다.
- 비판적 사고 훈련 — 적대적 활용. AI의 답을 '정답'이 아니라 '비판하고 검증할 텍스트'로 다룹니다. (실제로 마게시 등(Magesh et al., 2025)이 선도 상용 법률 리서치 AI들을 검증했더니, RAG를 적용한 제품조차 17~33%의 환각을 보였습니다.)
- 피드백·교정 — 인간 책임형. AI는 제안만 하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사람이 정합니다.
- 최종 평가 — 목적별 이원화. 내면화된 실력을 재는 시험에는 금지하고, 실무 협업 능력을 보는 과제에는 '과정 공개'를 전제로 제한적으로 허용합니다.
이 여섯 갈래를 하나로 꿰는 기준이 있습니다. AI가 학습과 상관없는 잡무(외재적 부하)를 덜어 주는가, 아니면 내가 직접 씨름해야 할 핵심 사고(본질적 처리)까지 대신 해치워 버리는가. 판단은 늘 이 하나의 질문에서 갈립니다.
결국, 인간에게 남겨 두어야 할 자리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AI에 계속 물어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정말 줄어들까요?
연구들이 주는 답은 조건부 "그렇다"입니다. 정답을 대신 받아 오는 방식으로 의존하면 줄어듭니다. 하지만 힌트를 얻어 스스로 다시 세워 보는 방식으로 쓰면 지켜집니다. 같은 도구인데도 그렇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스승이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게 만드는 편리한 대행 장치가 됩니다.
비판적 사고, 개념의 내면화, 오류를 견디는 힘, 판단에 책임지는 태도. 이런 것들은 대개 '이해가 더디고 실패를 거듭하는' 불편함 속에서 자랍니다.
저자는 여기서 칸트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 칸트
AI 시대에 이 문장은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훈련은 'AI를 잘 쓰는 법'만이 아닙니다. AI를 쓰더라도 무엇만큼은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지를 아는 힘입니다. 최종적인 이해, 검증, 선택, 그리고 책임. 이 네 자리를 내 몫으로 남겨 두는 것.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최승락(한림대 인문학부), 「생성형 AI 시대,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인지적 외주화의 위험과 교육적 해법」. 본문 속 통계는 아래 :::refs의 원 연구들에 근거하며, 각 수치는 해당 원문 및 최승락(2025)의 인용과 대조해 확인했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최승락 (2025). 「생성형 AI 시대,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인지적 외주화의 위험과 교육적 해법」. 한림대학교. https://www.hallym.ac.kr/CrossEditor/binary/files/000006/생성형AI시대_AI를_어떻게_활용할_것인가(최승락_교수).pdf
- Contractor, Z., & Reyes, G. (2025). Generative AI in Higher Education: Evidence from an Elite College. IZA Discussion Paper No. 18055 (arXiv:2508.00717). https://arxiv.org/abs/2508.00717
- Bastani, H., Bastani, O., Sungu, A., Ge, H., Kabakcı, Ö., & Mariman, R. (2025). Generative AI Without Guardrails Can Harm Learning: Evidence from High School Mathematics. PNAS, 122(26). https://www.pnas.org/doi/10.1073/pnas.2422633122
- Gerlich, M. (2025). AI Tools in Society: Impacts on Cognitive Offloading and the Future of Critical Thinking. Societies, 15(1), 6. https://doi.org/10.3390/soc15010006
- Lee, H.-P., Sarkar, A., Tankelevitch, L., Drosos, I., Rintel, S., Banks, R., & Wilson, N. (2025).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 Self-Reported Reductions in Cognitive Effort and Confidence Effects From a Survey of Knowledge Workers. CHI 2025. https://doi.org/10.1145/3706598.3713778
- Choi, S., Kang, H., Kim, N., & Kim, J. (2025a). How Does Artificial Intelligence Improve Human Decision-Making? Evidence from the AI-Powered Go Program.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https://doi.org/10.1002/smj.3694
- Choi, S., Kang, H., Kim, N., & Kim, J. (2025b). The Dual Edges of AI: Advancing Knowledge While Reducing Diversity. PNAS Nexu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2095800/
- Magesh, V., Surani, F., Dahl, M., Suzgun, M., Manning, C. D., & Ho, D. E. (2025). Hallucination-Free? Assessing the Reliability of Leading AI Legal Research Tools. Journal of Empirical Legal Studies. https://doi.org/10.1111/jels.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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