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답이 없던 문제

교육학에는 4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숙제가 하나 있다. 1984년 벤저민 블룸이 정리한 '2시그마 문제'다.

블룸이 관찰한 건 이랬다. 개인교사에게 일대일로 배운 학생은, 30명이 앉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들은 학생보다 성적이 훌쩍 올랐다. 얼마나 올랐냐면 표준편차 두 개만큼. 쉽게 말해 반에서 딱 중간이던 아이가, 상위 2% 근처까지 치고 올라간다는 뜻이다.

표준편차 2개(+2σ)의 도약 — 반에서 중간이던 학생이 상위 2%까지.
블룸의 2시그마: +2σ의 도약

효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래서 블룸의 질문은 잔인할 만큼 단순했다. 학생 모두에게 개인교사를 붙일 돈은 없는데, 30명이 앉은 교실에서 그 효과를 어떻게 흉내 낼 것인가. 그 뒤로 40년, 아무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2023년, 살만 칸이 TED 무대에 올라 그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칸아카데미가 GPT-4로 만든 AI 튜터, '칸미고(Khanmigo)'였다. 정답을 곧장 알려주지 않고 소크라테스처럼 되묻는다. 학생마다 속도를 맞춰 24시간 곁에 붙어 있다. 블룸이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개인교사가, 소프트웨어의 모습으로 나타난 셈이었다.

— 인공지능은 교육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구원할 수 있다.

"AI could save (not destroy) education."

— Sal Khan, TED (2023)

칸미고가 가져간 것, 그래서 드러난 것

칸미고 같은 AI 튜터는 개념 설명·힌트·수업안·문제 생성·채점 같은 지식 '전달' 노동을 가져갔지만, 왜 배우는지 느끼게 하고 포기하려는 학생을 붙잡는 동기·관계의 일은 가져가지 못했다.
기계가 가져간 일, 남은 일

칸미고가 교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뜯어보면 방향이 보인다.

학생에게는 개념을 설명하고, 힌트를 주고, 틀린 답을 다시 짚어줬다. 교사에게는 수업안을 짜주고, 문제를 만들고, 채점 초안까지 뽑아줬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식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나르는 일, 그러니까 '전달'이라 부를 만한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가져갔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AI가 지치지도 않고 설명하고 채점할수록, 기계에게 넘어가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가 오히려 또렷해졌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아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일. 문제집을 덮고 교실을 나가버리려는 순간, 이름을 부르며 붙잡는 일. 칸미고는 밤을 새워 미적분을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그 미적분을 왜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 그 마음까지 아이에게 심어주지는 못한다.

"사람만이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 때문"

— 김은영, 사이언스타임스(2018)

여기서 사람들은 대개 "그러니까 교사는 안전하다"로 이야기를 맺는다. 하지만 거기서 안심하고 덮는 순간, 정작 자기 무게중심이 어디 실렸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조금 다르게 읽으면 이렇게 된다. 어떤 일이 공짜에 가까워질수록, 바로 그 옆에 붙어 있던 사람의 일은 값이 오른다. 지식 전달이 싸질수록, 동기부여와 관계는 상대적으로 비싸진다. 교사라는 존재가 원래 소중해서가 아니다. 교사가 하던 일 가운데 기계가 못 가져간 부분만 남아서, 그만큼 진하게 농축되기 때문이다.

지식 전달이 기계로 넘어가 값이 싸질수록, 그 옆에 붙어 있던 동기부여와 관계의 일은 상대적으로 값이 오른다.
싸지는 전달, 비싸지는 관계

한국은 이미 실험대 위에 올라갔다

2025년 도입된 AI 디지털교과서는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들어왔지만 논쟁 끝에 법적 지위가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됐다 — 기계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사람 교사의 자리를 묻는 질문.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이건 멀리 실리콘밸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2025년,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초·중·고 일부 학년의 수학·영어·정보 과목에 도입했다. 학생마다 진도를 다르게 나가는 맞춤형 학습, 그리고 교사에게 학생별 학습 데이터를 넘겨주는 대시보드가 그 핵심이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잇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출처 : 교육부 (2024)

그런데 도입을 둘러싼 논쟁의 진짜 중심은 기술이 잘 돌아가느냐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 교사는 무엇을 하는가'였다. 기계가 진도를 알아서 맞춰주면, 교사는 그 자리에 남는가 아니면 밀려나는가. 이 물음은 결국 정치적 결정으로까지 번졌고, AI 디지털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지위가 정리됐다. 겉보기엔 법적 지위를 둘러싼 다툼이지만, 그 밑바닥에서 오간 질문은 하나였다. 기계가 가르치기 시작한 교실에서, 사람 교사의 자리는 대체 어디인가.

"결국 AI 시대에도 교육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이 아니라 학생을 이해하고 성장의 여정을 함께하는 교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디지털포용뉴스

대체되는 건 '교사'가 아니다

'AI 시대 교사 역할'을 검색해 보면, 글 대부분이 "교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안도로 끝난다. 그런데 이 문장은 곰곰이 뒤집어봐도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다. "교사는 소중하다"에 반대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반박할 상대가 없는 주장은, 실은 알려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뒤집었을 때 진짜로 그렇게 주장하는 쪽이 있어야, 그 결론은 살아 있다. 그래서 문장을 이렇게 다시 쓴다. 대체되는 건 '교사'가 아니라 '전달자로만 남은 교사'다. AI가 지식 전달을 잘하면 잘할수록, 자기 값어치를 오로지 '잘 설명하는 것'에만 걸어둔 교사는 값이 떨어진다. 반대로 무게중심을 동기·관계·판단 쪽으로 옮긴 교사는 오히려 더 귀해진다. 같은 교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어도, 몸값이 갈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지식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로 정의한 교사는 통로가 여러 개 생기면 값을 잃지만, '설명은 기계에 넘기고 사람은 사람을 붙든다'로 다시 정의한 교사는 값이 오른다.
교사를 가르는 자기정의

이 결론은 뒤집으면 진짜로 맞붙어 싸우는 상대가 있다. "AI 튜터가 결국 교사 수요 자체를 줄일 것"이라 보고 인건비를 아끼려는 교육 당국, "개인교사 소프트웨어 한 대면 교실 하나쯤 대신할 수 있다"고 파는 에듀테크 낙관론. 이들은 실제로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만약 그들이 옳다면, 교사는 통째로 싸지고 이 글의 결론은 틀린다. 바로 그래서 이건 논쟁이 성립하는 주장이다.

결국 판돈은, 교사가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 정의하느냐에 걸려 있다. 스스로를 '지식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 정의한 교사는, 통로가 여러 개 생긴 순간 값을 잃는다. 반대로 AI를 조교처럼 부리면서 '설명은 기계에 넘기고, 사람은 사람을 붙든다'로 자기 일을 다시 정의한 교사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선다.

조교를 부리는 첫 수

채점·반복 설명·연습문제 생성 같은 전달 업무를 AI에 넘겨 번 30분을 학급 평균이 아니라 이번 주에 포기하려는 학생 한 명에게 쓰는 것, 그 30분이 교사의 교체 불가능한 부분이다.
이번 주 한 가지: 30분의 재배치

무게중심을 옮긴다는 건 무슨 비장한 결심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시간표를 다시 짜는 일이다. 반복되는 전달 노동을 기계 쪽으로 밀어내고, 그렇게 아낀 시간을 사람만 할 수 있는 자리에 정확히 꽂는 것.

블룸의 2시그마는, 개인교사가 설명을 많이 해줘서 나온 숫자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그 아이 하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숫자였다. 칸미고는 그 개인교사의 의자에 대신 앉을 수 있다. 24시간 지치지 않고, 화 한 번 내지 않고, 같은 걸 백 번이라도 다시 설명하면서. 다만 그 의자에 앉아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자,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말하는 그 역할만은 — 아직, 넘겨받지 못했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