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지는 정점을 찍었는데, 현장은 왜 여전히 헤매는가
어느 제조 AI 기업의 소개 문구에 이런 대목이 있다.
"AI 시스템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를 넘어서는 정확도로 결함을 탐지한다."
— 한 제조 AI 기업 소개 문구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 비전 AI는 사람 눈이 그냥 지나치는 수십 마이크로미터짜리 스크래치, 미세한 크랙, 아주 옅은 색편차까지 초당 수십 장씩 잡아낸다. 검사 라인에서 '불량을 찾는 일' 자체는 이제 거의 풀린 문제에 가깝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탐지 정확도가 이만큼 올라갔는데도, 정작 현장 엔지니어의 밤샘은 줄지 않는다. 불량품 박스는 정확하게 걸러지는데, "그래서 이게 대체 왜 났느냐"고 물으면 AI는 입을 닫는다. 청년일보에 실린 어느 기사 제목이 이 틈을 정확히 찔렀다 — '불량률 0%의 환상'이다.
잘 찾아내는 것과 왜 그런지 아는 것. 이 둘 사이의 거리가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
'찾기'와 '왜'는 애초에 다른 문제다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한다. "불량을 이렇게 잘 찾아내는 AI라면, 원인쯤은 당연히 알려주겠지." 하지만 이 둘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결함을 찾는 일은 분류(classification) 문제다. 이 이미지가 정상이냐 불량이냐, 그리고 결함이 어디 있느냐. 라벨을 달아 둔 이미지 수만 장을 학습시키면 AI는 그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입력은 '지금 이 순간의 제품 표면'이고, 출력은 '불량이냐 아니냐'다. 시간의 흐름도, 공정의 이력도, 인과관계도 없이 성립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반면 제조 불량 근본원인 분석은 인과(causation) 문제다. 이 크랙이 대체 왜 생겼을까. 3번 프레스의 압력이 순간 튀어서일까, 원자재 로트가 바뀌어서일까, 어젯밤 습도가 올라가서일까, 아니면 이 셋이 겹쳐서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제품 사진 한 장으로는 어림도 없다. 공정 전체의 시계열, 설비 파라미터, 원자재 이력, 환경 데이터가 서로 어떻게 얽혀 그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비전 AI가 보는 건 '결과의 사진'이다. 그런데 원인은 그 사진 바깥에 있다. 그 제품이 라인을 타고 흘러오는 동안 벌어진 사건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사진을 아무리 정교하게 들여다봐도, 사진 밖에서 벌어진 일은 사진 안에 찍히지 않는다.
AI가 원인을 못 밝히는 세 가지 진짜 이유
첫째, 상관관계는 인과가 아니다. 머신러닝은 본질적으로 상관관계를 학습하는 기계다. "습도가 높은 날 불량이 많더라" 같은 상관은 잘 잡아낸다. 하지만 습도가 진짜 원인인지, 습도와 함께 움직인 다른 변수가 원인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인지는 구분하지 못한다. 인과를 밝히려면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 "만약 그 조건이 아니었다면, 불량이 안 났을까?" 주디아 펄이 2018년 『The Book of Why』에서 인과의 사다리 맨 윗단에 올려둔 반사실적(counterfactual) 물음이 바로 이것이다. 이 반사실적 질문은 데이터를 더 퍼붓는다고 저절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둘째, 불량은 대개 '여러 원인이 겹쳐서' 터진다. 현장의 진짜 불량은 범인이 하나인 경우가 드물다. 압력이 살짝 높고 + 원자재에 편차가 있고 + 온도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걸렸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터진다. 여러 조건이 만나는 교집합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다. 탐지 AI는 '이미 터진 결과'만 보기 때문에,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로가 어떻게 조합됐는지를 거꾸로 풀어낼 수 없다.
셋째, 원인이 담긴 데이터부터가 서로 연결돼 있지 않다. 사실 현장에서 가장 흔한 병목이 이거다. 검사 이미지는 비전 시스템에, 설비 파라미터는 PLC와 MES에, 원자재 이력은 ERP에, 환경 데이터는 또 별도 센서에 — 데이터가 저마다 다른 시스템에 흩어져 있고, 심지어 시간축조차 서로 안 맞는다. 원인을 밝히려면 이 조각들을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꿰어야 하는데, 그 연결이 안 돼 있으면 아무리 좋은 알고리즘도 요리할 재료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불량률 0%'는 환상이 되기 쉽다
탐지만 잘하는 AI를 들여놓으면, 눈에 보이는 지표는 분명히 좋아진다. 불량품이 정확히 걸러지니 출하 불량률이 뚝 떨어진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자. 이건 불량을 덜 만든 게 아니라, 더 잘 걸러낸 것일 뿐이다. 근본 원인이 그대로 살아 있는 한, 라인은 계속 똑같은 불량을 찍어내고 AI는 계속 성실하게 그걸 골라낸다. 원인은 손도 못 댄 채, 폐기 비용만 차곡차곡 쌓인다.
진짜 목표는 걸러낸 불량이 몇 개냐가 아니다. 애초에 그 불량을 만들지 않게 만드는 것, 즉 원인을 밝혀내 다시 공정으로 되먹이는 루프다.
'왜'에 다가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다행히 원인 규명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탐지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할 뿐이다.
- 데이터를 시간축으로 잇는다. 검사 결과, 설비 파라미터, 원자재 로트, 환경 데이터를 제품 단위(또는 로트 단위)로 묶어 하나의 타임라인 위에 올린다. 원인 분석의 성패는 알고리즘보다 바로 이 연결 작업에서 갈린다.
- 탐지 AI와 분석 AI를 따로 본다. 결함을 잡아내는 비전 모델과, 공정 데이터에서 원인을 추적하는 인과·통계 분석은 서로 다른 도구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알아서 대신해 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 AI를 '자동 판정기'가 아니라 '가설 제안기'로 쓴다. AI가 "3번 설비의 압력 변동이 이 불량과 강하게 연관돼 있다"는 식으로 후보를 좁혀 주면, 인과의 최종 판단과 검증은 엔지니어의 도메인 지식이 맡는다. 지금 기술 수준에서 가장 현실적인 역할 분담이다.
- 밝혀낸 원인을 다시 공정으로 되먹인다. 알아낸 원인이 설비 제어 기준이나 원자재 규격에 반영되지 않으면, 분석은 그냥 보고서 한 장으로 끝난다. 이 루프를 닫는 마지막 한 걸음이, 실제 불량률을 낮춘다.
정리
AI는 사람 눈을 넘어서는 정확도로 불량을 찾아낸다. 이건 이미 현실이 됐다. 하지만 '찾기'는 결과의 사진을 읽는 분류 문제이고, '왜'는 사진 바깥의 사건들을 거꾸로 풀어내는 인과 문제다. 상관관계 학습의 한계, 복합 원인의 구조, 흩어진 원인 데이터 — 이 세 가지 때문에 탐지 AI는 원인 앞에서 말을 잃는다.
그러니 검사 지표가 좋아졌다고 공정까지 좋아졌다 착각하지 말자. 탐지의 정점에서 멈춰 서면 '불량률 0%의 환상'에 갇힌다. 데이터를 잇고, 인과를 추적하고, 그 답을 다시 공정으로 되먹이는 팀만이 실제로 불량을 줄인다. AI에게 '왜'를 물으려면, 먼저 AI가 '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재료부터 갖춰 줘야 한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Alchera. 제조 품질검사의 AI 전환이 불량률을 낮추는 방식. https://www.alchera.ai/resource/blog/manufacturing-quality-inspection-ai-conversion-ax
- 최강혁 (2026). [청년발언대] 불량률 0%의 환상…AI 품질관리가 바꾸는 제조업의 미래. 청년일보. https://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219491
- Judea Pearl & Dana Mackenzie (2018). The Book of Why: The New Science of Cause and Effect. https://en.wikipedia.org/wiki/The_Book_of_Why
- Softweb Solutions. Surface Defect Detection: AI-based Vision Inspection. https://www.softwebsolutions.com/surface-defect-detection/
- BlueNet. ERP, MES, SCADA, PLC & IoT Integration Challenges in Manufacturing. https://www.bluenetinc.com/erp-mes-scada-plc-iot-integration-challenges-manufacturing/
- IDCON. Can You Have Multiple Root Causes? We Reveal 3. https://www.idcon.com/resource-library/root-cause/reliability-tips-the-layers-of-root-c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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