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의 문이 먼저 좁아지고 있다

채용 시장이 얼어붙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자리는 늘 '맨 아래 칸'이었다. 신입 자리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흔들리는 이유가 다르다. 이번 하락을 만든 건 경기도 정원 감축도 아닌 AI다. 신입이 하던 일 자체를 AI가 대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탠퍼드 AI 인덱스 2026은 이 변화를 "AI가 밀어낸 주니어"라는 말로 정리했다. 세대를 가르는 고용 충격이라는 진단이다. 실제로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2022년 말 정점 대비 약 20% 줄어든 반면, 26세 이상 개발자는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늘었다. 경력자는 상대적으로 자리를 지키는데, 사회에 막 발을 들이려는 20대 초반만 유독 문턱이 높아진다. 그게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잡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스탠퍼드 연구진이 미국 급여대장 데이터로 AI 노출 직군의 고용을 추적한 연구에서 나온 것으로, 연구진은 같은 직무라도 저연차일수록 고용이 먼저 꺾인다는 사실을 신입 노동부터 먼저 대체하는 '연차 편향적 기술 변화'라 불렀다. 국내 보도도 결이 비슷하다. 법률, 번역, 디자인, 회계처럼 초년생이 반복 업무로 실력을 쌓던 직군에서 신입 채용이 먼저 줄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1년 사이 20대 작가·통번역가는 20.6%, 회계·경리 사무원은 11.5%, 디자이너는 7.6%, 법률사무원은 6.1% 줄었다.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2022년 말 정점 대비 약 20% 줄었지만, 26세 이상 개발자는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늘었다. AI가 신입 노동부터 먼저 대체하는 연차 편향적 기술 변화로, 20대 초반 신입의 문턱만 유독 높아지고 있다.
세대로 갈린 고용 충격
최근 1년 사이 20대 신입 채용이 줄어든 직군은 작가·통번역가 20.6%, 회계·경리 사무원 11.5%, 디자이너 7.6%, 법률사무원 6.1% 감소로, 모두 정해진 형태의 결과물을 반복해 만들며 성장하던 자리이자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과 겹친다.
먼저 줄어든 신입 직군

이 직군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정해진 형태의 결과물을 반복해서 만들며 성장하던 자리라는 점이다. 계약서 초안, 1차 번역, 기본 시안, 전표 정리. 신입이 몸으로 익히던 바로 이 일들이, 지금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과 정확히 겹친다.

'배우면서 기여한다'는 공식이 깨졌다

신입 채용은 회사가 훈련 기회를 주고 신입이 반복 업무로 기여하며 성장 거래가 성립하는 구조였지만, AI가 반복 업무를 더 싸고 빠르게 대신하면서 '가르쳐 가며 쓴다'는 명분이 약해졌다. 이제 회사는 'AI 위에 무엇을 더 얹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깨진 '배우며 기여' 공식

지금까지 신입 채용에는 말로 하지 않는 약속이 하나 있었다. 회사는 당장의 완성된 성과가 아니라 '2~3년 뒤의 잠재력'을 사고, 그동안 신입은 잡무와 반복 업무를 처리하며 실력을 쌓는다. 회사는 싼값에 일손을 얻고, 신입은 훈련받을 기회를 얻는다. 서로 주고받는 거래였다.

AI는 이 거래의 한쪽을 지워버렸다. 신입이 맡던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을 더 싸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자, 회사 입장에서는 '가르쳐 가며 쓴다'는 명분이 약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채용의 잣대도 슬그머니 움직인다. 회사는 이제 이렇게 묻는다.

대학생 입장에서 이 질문은 좀 잔인하게 들린다. 아직 경력이 없는데, 경력이 있어야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받는 셈이니까. 하지만 뒤집어 보면 여기에 길이 있다. 답을 '경력'이 아니라 '증거'로 만들면 된다.

스펙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

'AI 시대 취업 포트폴리오'라는 화두가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점, 어학 점수, 자격증 같은 전통적인 스펙은 '이 사람이 성실하다'는 신호는 준다. 하지만 '이 사람이 AI와 함께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는 증명하지 못한다. 반대로 포트폴리오는 결과물 그 자체다. 잠재력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실제로 해낸 일을 눈앞에 꺼내 보인다.

다만 요즘의 포트폴리오는 예전과 성격이 다르다. 예전엔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가 핵심이었다. 지금은 결과물만으로는 사람을 가려내기 어렵다. AI를 쓰면 누구나 그럴듯한 산출물 정도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트폴리오가 증명해야 하는 대상 자체가 바뀐다. 이제 봐야 할 것은 세 가지다.

AI 시대의 취업 포트폴리오가 증명해야 하는 것은 세 가지다. 무엇을 만들지 스스로 정하는 힘, AI 초안 중 무엇을 버리고 살렸는지 고르고 다듬는 힘, 그리고 아이디어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배포하거나 누군가에게 가닿게 한 끝까지 밀어붙인 흔적이다.
포트폴리오가 증명할 세 가지
  • 문제를 스스로 정하는 힘 — 무엇을 만들지 내가 정했는가. 남이 시킨 과제가 아니라, 내가 찾아낸 과제인가.
  • 고르고 다듬는 힘 — AI가 내놓은 초안 중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렸는가. 그리고 그렇게 고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 끝까지 밀어붙인 흔적 — 아이디어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쓰이거나 배포되거나 누군가에게 가닿았는가.

앞서 본, 신입 채용이 먼저 줄어든 직군일수록 이 세 가지가 더 중요해진다. AI가 1차 산출물을 떠맡는 만큼, 사람에게 남는 가치는 '판단하고 책임지는 층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번역가 지망생이라면, 단순 번역 샘플보다 'AI 번역을 감수하고 왜 이렇게 고쳤는지'를 기록한 작업물이 더 강한 증거가 된다. 디자이너라면, 예쁜 시안을 모아 놓은 묶음보다 '어떤 사용자의 문제를 어떤 판단으로 풀었는지' 이야기가 담긴 사례가 훨씬 세게 말을 건다.

대학생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거창한 프로젝트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하나다. AI를 도구로 쓰되, 도구 이상의 판단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 방법은 이렇게 셋으로 정리된다.

대학생이 지금 할 수 있는 세 가지는 작은 문제를 스스로 골라 끝까지 만들고, AI에게 무엇을 왜 시키고 고르고 버렸는지 과정을 기록하며, 깃허브·블로그·배포·공모전처럼 눌러볼 수 있는 링크로 결과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도구 이상의 판단이 나에게서 나왔음을 남기는 게 핵심이다.
대학생이 지금 할 세 가지

첫째, 작은 문제를 스스로 골라 끝까지 만들어 본다. 학교나 동아리, 내 주변에서 겪은 불편 하나를 문제로 정의하고, 거기에 AI를 붙여 해결책을 만들어 실제로 누군가 쓰게 한다.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문제를 정했고, 내가 끝을 봤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둘째,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다. AI에게 무엇을 시켰고, 그 결과 중에서 무엇을 왜 골랐고 무엇을 왜 버렸는지를 남긴다. 이 기록이 결과물보다 더 강력한 차별점이 된다. 면접에서 "이거 그냥 AI로 만든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들어올 때, 정면으로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셋째, 결과를 밖으로 꺼낸다. 깃허브, 블로그, 배포한 서비스, 공모전 제출물. 형태는 뭐든 좋다. 눌러서 확인할 수 있는 링크 하나가, 자기소개서 열 줄보다 무겁다.

문이 좁아진 게 아니라, 열쇠가 바뀌었다

첫 일자리를 증명하는 방식이 학점·어학·자격증으로 자격을 갖췄다는 증명에서, 문제 정의·판단·배포한 결과물로 실제로 해냈다는 증거로 옮겨가고 있다. 문이 좁아진 게 아니라 열쇠가 바뀐 것이며, 새 열쇠를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을 때 미리 깎아 두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좁아진 문이 아니라 바뀐 열쇠

AI가 신입 자리를 잠식한다는 진단은 분명 불안하다. 하지만 그 진단의 뒷면에는 기회도 있다. 반복 업무로 실력을 증명하던 시절에는, 일단 그 자리에 들어가야만 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대학생도 AI를 손에 쥐면, 입사하기 전에 이미 '일하는 사람'의 산출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첫 일자리를 증명하는 방식이 '자격을 갖췄다는 증명'에서 '실제로 해냈다는 증거'로 옮겨 가는 중이다. AI 시대 취업 포트폴리오는 그 증거를 담는 그릇이고,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다. 문이 좁아진 게 아니라 열쇠가 바뀐 것이라면, 지금 할 일은 분명하다. 새 열쇠를, 아직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을 때 미리 깎아 두는 것이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