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주 템피의 밤길. 2018년 3월 18일, 볼보 XC90 한 대가 자율주행 모드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일레인 허츠버그가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차의 센서는 그를 분명히 감지했다. 그런데도 차는 멈추지 못했다. 시스템이 그를 '미확인 물체'로 봤다가 '차량'으로, 다시 '자전거'로 분류를 오가느라 시간을 썼고, 그 사이에 제동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게다가 개발사가 볼보의 긴급제동 기능을 꺼둔 상태였다. 그래서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운전석에는 안전요원 라파엘라 바스케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 사고로 형사 법정에 선 이름은 우버가 아니었다. 그 순간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있던 바스케스, 그 사람이었다.
자율주행이 몰았지만, 기소된 건 그 사람이었다
미 연방 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에 따르면, 사고 순간 차량을 몰던 주체는 우버의 개발 중인 자율주행 시스템이었다. 그런데도 이듬해, 이해충돌로 사건을 넘겨받은 야바파이 카운티 검찰은 우버라는 회사에 형사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2020년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쪽은 안전요원 개인이었다. 바스케스는 2023년 위험행위(endangerment)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실질적으로 차를 운전한 것은 소프트웨어였지만, 법이 붙잡은 이름은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8년 뒤, 한국의 보험업계가 걱정하는 것이 정확히 이 장면이다.
실질적 통제권은 차량 시스템에 있지만 법적 책임은 운전자에게 귀속되는 '책임의 괴리'가 예상된다.
— 한국경제, 「자율주행 사고나면, 책임은 전부 운전자가?…보험사 비상」 (2026)
'자율주행 사고 책임'을 검색하면 대개 이 괴리와 마주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기대한다. 차가 똑똑해질수록 책임도 차를 만든 쪽으로 옮겨가겠지. 하지만 바스케스의 판결은 그 기대가 최소한 지금은 거꾸로 서 있다는 걸 보여준다.
책임은 '단계'로 갈리고, 사고는 단계 사이에서 난다
자율주행은 SAE 기준으로 0에서 5까지 단계로 나뉜다. 레벨2까지는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운전의 주체이고, 시스템은 어깨너머로 돕는 보조에 불과하다. 레벨4 이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해진 조건 안에서는 시스템이 운전의 주체가 되고, 책임의 무게추도 제조사와 시스템 쪽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그 사이에 낀 레벨3, 즉 '조건부 자율주행'이라는 회색지대다.
레벨3에서 차는 스스로 달린다. 그러다 자기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운전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제 당신이 받으세요.' 그러고는 제어권을 넘긴다. 한국은 2020년 세계 최초로 레벨3 안전기준을 마련하며 이 제어권 전환의 조건을 규정했다. 그런데 바로 이 전환의 몇 초가 책임의 함정이다. 차가 운전하는 동안에는 딴짓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 놓고, 위기의 순간엔 즉시 정신을 차려 넘겨받으라고 요구한다. 넘겨받지 못하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운전자의 몫이 된다.
바스케스의 사고는 레벨3가 아니라 시험 주행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요구된 역할은 똑같았다. 시스템이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시스템이 놓친 것을 사람이 대신 메우는 감시자. 그리고 사고는 하필 그 감시가 불가능에 가까운 순간에 일어난다.
구상권이라는 이론, 입증이라는 벽
한국의 제도는 얼핏 이 괴리를 이미 메워 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사고가 나도 피해자는 우선 운행자(가입한 보험)로부터 신속하게 배상받는다. 그다음 결함이 드러나면 보험사가 제조사에 구상권을 행사한다. 피해자 구제는 늦추지 않으면서, 최종 부담은 원인을 제공한 쪽으로 돌린다는 설계다.
그런데 이 설계는 딱 절반만 작동한다. 걸리는 곳은 '결함이 드러나면'이라는 그 한 마디다.
자율주행차 사고는 기존 차량과 달리 원인이 단일 주체에 귀속되지 않는 구조다. 운전자뿐만 아니라 차량 제작사, 소프트웨어 개발사, 통신·플랫폼 사업자, 사이버 보안 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 한국재난뉴스, 「정부,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 나눈다」 (2026)
원인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으면, 구상권은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입증해야 비로소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입증의 핵심 재료가 문제다.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DSSAD)의 데이터는 제조사가 설계하고 사실상 손에 쥐고 있다. 사고 원인의 증거를, 정작 책임을 나눠야 할 상대가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이나 보험사가 소프트웨어의 판단 오류를 법정에서 입증하는 일은, 코드와 로그를 가진 쪽과 벌이는 기울어진 싸움이다.
그래서 배상은 빠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구상은 느리거나, 아예 멈춰 선다. 빠른 배상을 위해 운행자를 1차 책임자로 붙박아 둔 결과다. 괴리는 제도가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이 아니라, 제도가 스스로 택한 순서다.
그래도 제조사로 넘어간다는 전망 — 절반만 맞다
물론 반대 견해도 있다. 그리고 그 견해가 이 글의 결론을 시험한다.
향후 자율주행차 관련 사고에서는 종래의 운전자에 대한 형사책임이 상당부분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책임으로 전환될 것이고, 민사책임도 운전자의 과실 책임에서 제조물 책임과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책임 등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 오토일렉트로닉스, 「자율주행차 사고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
이 전망은 옳다. 다만 여기에는 '언제'가 빠져 있다. 책임이 시스템 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레벨4 이상이 실제로 도로를 채운 뒤의 이야기다. 산술적으로 말하면, 그 사이에 놓인 레벨2~3 과도기는 결코 짧지 않다. 우리는 이미 2018년의 바스케스와 2026년 보험업계의 걱정 사이, 8년을 지나왔다. 그동안 무게추는 넘어가지 않았다. 전환은 방향으로는 맞지만, 오늘 사고를 당한 개인에게 도착하는 속도로는 틀렸다. 전환을 기다리는 사람과 오늘 사고를 당한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몇 초를 누가 기록하고 있는가
바스케스가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하던 날, 우버는 이미 자율주행 부문(ATG)을 오로라에 팔아넘긴 뒤였다. 회사는 사업을 접었고, 개인의 전과는 남았다.
다음에 '자율주행 사고 책임'을 검색하는 사람은, 대개 이미 사고를 겪은 뒤일 것이다. 그 순간 그의 편에 설 수 있는 것은 제도의 좋은 취지가 아니라 데이터다. 경고음이 언제 울렸는지, 차가 몇 초를 주고 제어권을 넘겼는지, 그 몇 초 동안 시스템은 무엇을 보고도 놓쳤는지를 담은 기록. 그 기록을 지금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 그것이 핸들을 넘겨받는 그 몇 초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한국경제 (2026). 「자율주행 사고나면, 책임은 전부 운전자가?…보험사 비상」.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11998321
- 한국재난뉴스 (2026). 「정부,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 나눈다… 보상 절차 표준화 추진」. 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57
- 오토일렉트로닉스. 「자율주행차 사고와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 https://www.autoelectronics.co.kr/article/articleView.asp?idx=2820
- U.S.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2019). Collision Between Vehicle Controlled by Developmental Automated Driving System and Pedestrian, Tempe, Arizona, March 18, 2018 (HAR-19/03). https://www.ntsb.gov/investigations/AccidentReports/Reports/HAR1903.pdf
- SAE International (2021). J3016 — Taxonomy and Definitions for Terms Related to Driving Automation Systems for On-Road Motor Vehicles. https://www.sae.org/standards/content/j3016_202104/
- NPR (2019). Uber Not Criminally Liable In Death Of Woman Hit By Self-Driving Car, Says Prosecutor. https://www.npr.org/2019/03/06/700801945/uber-not-criminally-liable-in-death-of-woman-hit-by-self-driving-car-says-prosec
- NPR (2020). Backup Driver Of Autonomous Uber SUV Charged With Negligent Homicide In Arizona. https://www.npr.org/2020/09/16/913530100/backup-driver-of-autonomous-uber-suv-charged-with-negligent-homicide-in-arizona
- CNN Business (2023). Uber self-driving car test driver pleads guilty to endangerment in pedestrian death case. https://edition.cnn.com/2023/07/29/business/uber-self-driving-car-death-guilty
- Telematics Wire (2020). Safety Standards for Level 3 Automated Vehicles Announced by Korea. https://telematicswire.net/safety-standards-for-level-3-automated-vehicles-announced-by-korea/
- CNBC (2020). Uber sells ATG self-driving unit to Aurora. https://www.cnbc.com/2020/12/07/uber-sells-atg-self-driving-unit-to-auror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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