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자세히 리더의 표정을 읽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에 예산이 붙는지, 어떤 회의에서 리더의 눈이 반짝이는지, 어떤 질문 앞에서 리더가 말끝을 흐리는지. 구성원들은 이런 신호를 하나하나 모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합해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계산합니다. 조직 이론가 칼 와익이 1995년에 '센스메이킹'이라 이름 붙인, 모호함 속에서 단서를 엮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과정입니다.
그래서 리더가 AI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그 혼란은 리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리더가 보내는 신호가 흐려지는 순간, 조직 전체의 나침반이 함께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리더십 방향이 모호할 때 생기는 균열은 대개 소리 없이, 그러나 아주 빠르게 번집니다.
조직은 리더의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그 일관된 태도를 보고 안심한다.
방향이 없을 때 나타나는 네 가지 균열
리더의 신호가 흐려지면, 조직 안에서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뿌리가 같은 네 가지 균열이 나타납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1. 실무자가 각자도생을 시작한다
위에서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오히려 유능한 실무자일수록 먼저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회사 몰래 유료 도구를 결제해 씁니다. 누군가는 회사 데이터를 외부 서비스에 그대로 붙여넣습니다. 방향이 없다는 건 '금지'가 아니라 '무질서'를 부른다는 뜻입니다.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링크드인의 2024년 조사에서, AI를 쓰는 직장인의 78%가 회사가 지정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 도구를 몰래 들여와 썼고(BYOAI), 절반이 넘는 52%는 정작 중요한 업무에 AI를 쓴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렸습니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실험은 겉으로는 혁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안 사고와 중복 투자의 씨앗이 됩니다. 실제로 사이버헤이븐이 2023년에 분석한 결과 직원들이 ChatGPT에 붙여넣는 데이터의 11%가 기밀 정보였고, 삼성전자는 엔지니어들이 반도체 소스코드를 ChatGPT에 입력한 사고가 20일 새 세 차례 터지자 생성형 AI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2. 관망하는 사람이 다수가 된다
정반대편에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 있습니다. "위에서 정해주면 그때 하겠다"며 아예 손을 놓는 다수입니다.
리더가 확신 없이 "AI 한번 검토해봐"라고 던진 지시는,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숙제가 됩니다.
한쪽은 앞서가고 한쪽은 멈춰 서면, 조직의 학습 속도는 가장 느린 쪽에 맞춰 멈춥니다.
3. 유행어만 남고 성과는 사라진다
방향이 없는 리더는 종종 그 공백을 '분주함'으로 메웁니다.
도구를 도입하고, 워크숍을 열고, 보고서마다 AI를 갖다 붙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가 빠진 도입은 결코 KPI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분기가 지나면 남는 것은 구독료 청구서, 그리고 "그래서 결국 뭐가 좋아졌지?"라는 질문 하나뿐입니다.
4. 핵심 인재가 조용히 떠난다
가장 뼈아픈 균열입니다. AI를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은 인재일수록, 방향 없는 조직에서 먼저 지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란을 피우지 않습니다. 조용히, 더 명확한 비전을 가진 곳으로 이직서를 냅니다. 맥킨지가 2021년 미국 직장인 약 1,00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약 70%가 삶의 목적을 일에서 찾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일에서 그 의미와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은 결국 그것을 주는 조직으로 떠납니다.
리더가 흔들리는 진짜 이유
그렇다면 리더는 왜 방향을 못 잡을까요? 게으르거나 무능해서인 경우는 의외로 드뭅니다. 이건 소수 리더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같은 2024년 조사에서 리더의 79%가 'AI를 도입해야 경쟁력을 유지한다'고 답했지만, 정작 60%는 회사에 그것을 실행할 계획과 비전이 없다고 스스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대개는 다음 세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져 있습니다.
- 전문가가 되려는 함정. 내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직접 마스터해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리더의 일은 기술을 직접 익히는 것보다 어디에 걸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데 있습니다.
- 완벽한 확신을 기다리는 함정. 기술이 안정되고 정답이 또렷하게 보일 때 움직이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AI 영역에서 그런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리더의 일입니다.
- 위임과 방치를 혼동하는 함정. "팀에 맡겼다"고 말은 하지만, 방향과 자원을 함께 주지 않은 위임은 위임이 아닙니다. 그냥 방치입니다.
방향을 잡는다는 건 정답을 아는 게 아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합니다. AI 시대 리더십 방향의 핵심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준선을 세워 주는 일입니다. 사실 다음 세 가지만 분명히 해도 앞서 말한 균열은 대부분 봉합됩니다.
- 목적을 좁혀서 말합니다. "AI로 혁신하자"가 아니라 "올해는 고객 응대 시간을 30% 줄이는 데에만 AI를 쓴다"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까지 함께 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선순위 없는 방향은 방향이 아닙니다.
- 실험의 규칙을 정합니다. 어떤 데이터는 절대 외부에 넣지 않는다, 어떤 도구는 승인을 받은 뒤에 쓴다, 실패한 실험은 벌하지 않는다. 이 세 줄의 규칙이 각자도생과 관망을 동시에 막아줍니다.
- 리더가 먼저 배웁니다.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감을 잡을 만큼은 직접 써봐야 합니다. 리더가 배우려는 태도 자체가 조직에는 가장 강력한 방향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리더의 몫은 '태도'다
AI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것은 태도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 불확실한 채로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자원을 거는 태도. 조직은 리더의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바로 이 일관된 태도를 보고 안심합니다.
방향을 못 잡는 리더 밑에서 조직은 요란하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유능한 사람이 지치고, 좋은 아이디어가 방치되고, 시간이 조용히 새어 나갈 뿐입니다. 그 조용함이 가장 위험합니다.
지금 우리 조직이 AI에 대해 '어디로 가는지'를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지,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입니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Karl E. Weick (1995). Sensemaking in Organizations. Sage Publications. https://us.sagepub.com/en-us/nam/sensemaking-in-organizations/book4988
- Microsoft & LinkedIn (2024). 2024 Work Trend Index Annual Report: AI at Work Is Here. Now Comes the Hard Part. https://www.microsoft.com/en-us/worklab/work-trend-index/ai-at-work-is-here-now-comes-the-hard-part
- Cyberhaven (2023). 11% of data employees paste into ChatGPT is confidential. https://www.cyberhaven.com/blog/4-2-of-workers-have-pasted-company-data-into-chatgpt
- Siladitya Ray, Forbes (2023). Samsung Bans ChatGPT And Other Chatbots For Employees After Sensitive Code Leak. https://www.forbes.com/sites/siladityaray/2023/05/02/samsung-bans-chatgpt-and-other-chatbots-for-employees-after-sensitive-code-leak/
- McKinsey & Company (2021). Help your employees find purpose—or watch them leave.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people-and-organizational-performance/our-insights/help-your-employees-find-purpose-or-watch-them-le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