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에게 모르는 문제는 더 이상 '막힘'이 아니다. 물음표가 뜨는 순간, 손이 먼저 챗봇으로 향한다. 몇 초 뒤면 깔끔하게 정리된 답이 도착한다. 풀이 과정도, 근거도, 예시도 다 붙어 있다. 공부는 부드럽게 흘러가고, 노트는 채워지고, 숙제는 금방 끝난다.
문제는 바로 그 '부드러움'이다. 2026년 6월 나온 논문 The Effortless Trap에서 Mario Brcic와 Stjepan Frljic는 이 감각을 정확히 짚는다.
"fluent, AI-smoothed practice can feel most productive exactly when it teaches least"
— AI가 매끄럽게 다듬어 준 학습은, 정작 가장 적게 가르칠 때 가장 생산적으로 느껴진다. (The Effortless Trap)
배우는 '느낌'과 실제로 배우는 것 사이에는 틈이 있다. 논문이 근거로 든 하버드 물리학 수업 실험이 이 틈을 실측했다. 학생을 무작위로 나눠 능동적으로 씨름하게 한 쪽이 더 많이 배웠는데도, 정작 그 학생들은 스스로 '덜 배운 것 같다'고 느꼈다는 게 Deslauriers 연구팀의 2019년 결과다. 지금 교실에서 조용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바로 이 틈이다.
점수는 오르는데 실력은 내려가는 역설
이건 그저 느낌의 문제가 아니다. 숫자로도 드러난다. 교육 싱크탱크 Bellwether가 'Productive Struggle' 보고서에서 정리한 패턴을 보자.
"AI use increased homework scores and reduced homework completion time, but lowered exam performance"
— AI를 쓰자 숙제 점수는 오르고 걸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정작 시험 성적은 떨어졌다. (Bellwether, Productive Struggle)
이 패턴을 가장 큰 표본으로 확인한 건 David Strömberg와 동료들이 중국 중·고등학생 26,811명을 30개월간 추적한 2026년 연구다. AI를 쓰자 숙제 점수는 18% 오르고 푸는 시간은 30% 줄었지만, 추적 6개월째부터 월별 시험 성적이 20% 낮아졌다. 이 세 지표를 나란히 놓으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숙제 점수와 걸린 시간은 '결과물의 품질'을 잰다. 반면 시험 성적은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을 잰다. AI는 앞의 둘을 극적으로 좋게 만든다. 그런데 그 개선이 세 번째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간다. 매끄럽게 끝낸 숙제일수록, 시험장에서 기댈 것이 없어진다.
이게 상관이 아니라 인과임을 보인 실험도 있다. Hamsa Bastani 연구팀이 튀르키예 고등학생 약 1,000명을 무작위로 나눠 진행한 연구에서, 평범한 챗봇을 쓴 학생들은 연습 문제 정답률이 48% 뛰었지만 정작 도구를 치운 시험에서는 대조군보다 17% 낮았다. 흥미로운 건, 같은 모델을 '정답을 곧장 주지 않도록' 다시 설계하자 그 시험 손실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AI가 무엇을 대신해 주느냐였다.
왜 그럴까. 학습은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은 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인지적 부하'를 통해 일어난다. 그런데 AI가 그 부하를 대신 짊어지면, 결과물은 남지만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들어 준 역기는 내 근육을 키우지 못한다.
'생산적 실패'가 알려주는 것
여기서 교육학의 오래된 개념 하나가 다시 무게를 얻는다. 바로 생산적 실패(productive failure)다. 학습과학자 Manu Kapur가 정립한 이 개념은, 정답을 먼저 알려주지 말고 학생이 스스로 씨름하며 틀리게 두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는 연구 흐름이다. Kapur의 실험들에서 단순 암기와 재현은 두 방식이 엇비슷했지만, 배운 것을 처음 보는 문제에 옮겨 적용하는 '전이'에서는 먼저 씨름한 학생들이 뚜렷이 앞섰다.
핵심은 '실패' 자체가 아니다. 실패가 만들어 내는 '틈'에 있다. 답을 모른 채 끙끙대는 동안, 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문제의 구조를 뜯어보고,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자기 방식이 왜 안 통하는지를 감지한다. 이 사전 씨름이 있어야, 나중에 정답을 봤을 때 "아, 그래서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가 깊이 박힌다. 씨름 없이 받은 정답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일 뿐이다.
AI 즉답의 진짜 비용이 바로 여기 있다. AI는 이 생산적 실패의 구간을 통째로 삭제한다. 틀릴 기회, 헤맬 기회, 그래서 배울 기회를 없앤다. 답을 먼저 주는 순간, 그 문제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의 대부분이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면 언제 AI를 꺼야 하는가
"AI를 쓰지 말라"는 결론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사실 틀렸다. AI는 강력한 학습 도구다. 이 도구를 언제 켜느냐가 전부를 가른다. Brcic와 Frljic의 결론도 같다 — '허용이냐 금지냐'는 틀린 질문이고, 진짜 질문은 AI를 학습의 어느 지점에 놓느냐다. 첫 어려운 시도와 마지막 백지 점검은 학생 몫으로 남기고, 그 사이에만 가드레일 친 AI를 넣으라는 것. 배움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면, AI를 끄는 순간과 켜는 순간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부드러움을 의심하는 습관
결국 학생에게 필요한 새로운 감각은 하나다. 공부가 너무 매끄럽게 흘러갈 때, 오히려 경계하는 것이다. 힘들지 않았다면, 대개 배우지 않은 것이다. 막힘, 헤맴, 되돌아감. 예전 같으면 '비효율'로 불렸을 그 마찰이, AI 시대에는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거의 유일한 신호가 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AI에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에게 딱 한 번만 물으면 된다. "지금 이 답을 받으면 편해지는가, 아니면 배우게 되는가?" 편해지기만 한다면, 잠시 AI를 끄는 편이 낫다. 즉답이 넘치는 시대의 역설은 여기 있다. 답을 참는 능력이야말로, 이제 가장 귀한 학습 능력이 되었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 Brcic, M., & Frljic, S. (2026). The Effortless Trap: Productive Struggle, AI, and the Illusion of Learning. arXiv:2606.26181. https://arxiv.org/abs/2606.26181
- Kulesa, A. C., Mission, M., Croft, M., & Wells, M. K. (2025). Productive Struggle: How Artificial Intelligence Is Changing Learning, Effort, and Youth Development in Education. Bellwether. https://bellwether.org/publications/productive-struggle/
- Strömberg, D., Lei, V., & Wu, Y. (2026). The Generative AI Learning Penalty: Evidence from Chinese Secondary Education. CEPR Discussion Paper DP21577. https://cepr.org/publications/dp21577
- Bastani, H., Bastani, O., Sungu, A., Ge, H., Kabakcı, Ö., & Mariman, R. (2025). Generative AI Without Guardrails Can Harm Learning: Evidence from High School Mathematics. PNAS. https://www.pnas.org/doi/10.1073/pnas.2422633122
- Kapur, M. (2008). Productive Failure. Cognition and Instruction, 26(3), 379–424. (개괄: Productive Failure: Unlocking Deeper Learning Through the Science of Failing, Wiley, 2024.) https://www.manukapur.com/
- Deslauriers, L., McCarty, L. S., Miller, K., Callaghan, K., & Kestin, G. (2019). Measuring actual learning versus feeling of learning in response to being actively engaged in the classroom. PNAS, 116(39), 19251–19257.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821936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