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창의성을 재능이라 믿으면 훈련은 시간 낭비이고 결과물은 소수 천재의 몫이 되며 안 되면 재능 탓으로 돌린다. 반대로 능력이라 믿으면 창의성은 조직 시스템과 개인 습관의 문제가 되고 훈련하면 달라진다. 어느 쪽을 믿느냐가 우리가 실제로 하는 행동을 바꾼다.
믿음이 행동을 바꾼다

회의실에서 누군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방 안의 절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창의성은 어떤 사람에게는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재능이라는 것. 우리는 이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 전제가 흔들리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함께 흔들린다. 창의성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훈련은 시간 낭비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소수의 '천재'에게 맡겨야 할 일이 된다. 반대로 창의성이 길러지는 능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조직이 어떤 시스템을 갖췄느냐의 문제이고, 개인이 어떤 습관을 들였느냐의 문제가 된다.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가 실제로 하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두 개의 신화가 만든 오해

창의성에 대한 두 가지 신화가 오해를 키운다. 좋은 아이디어가 어느 순간 번쩍 떨어진다는 유레카 신화와, 위대한 창작을 고립된 천재가 홀로 이뤄낸다는 고독한 창조자 신화다. 데이비드 버커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빠른 불꽃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창의성을 둘러싼 두 신화

경영학자 데이비드 버커스(David Burkus)는 2013년 저서 『The Myths of Creativity』에서 우리가 창의성에 대해 품고 있는 통념들을 하나씩 해부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힘이 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레카 신화(the Eureka Myth)'다. 좋은 아이디어는 목욕탕에서, 산책길에서, 잠들기 직전에 어느 순간 번쩍 하고 떨어진다는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고독한 창조자 신화(the Lone Creator Myth)'다. 위대한 창작은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골몰한 한 명의 천재가 이뤄낸다는 이미지다.

버커스의 결론은 단순하고, 조금 냉정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빠른 불꽃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나온다."

— 데이비드 버커스, 『The Myths of Creativity』 ("new ideas come from hard work, not a quick spark")

우리가 '번뜩임'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은, 사실 오랜 축적의 맨 마지막 한 조각일 때가 대부분이다. 창의성 연구자 키스 소여(Keith Sawyer)가 재즈 밴드와 즉흥극 앙상블을 분석해 보였듯, 통찰의 순간은 대개 그 앞에 놓인 오랜 노동과 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앞에 쌓인 수많은 시도와 실패, 이리저리 짜맞춰 보다가 버린 것들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편집되어 사라진다. 그래서 결과만 본 사람들은 이렇게 정리해버린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재능이 있었어."

바로 이 지점에서 창의성이 타고나는 재능이라는 오해가 자라난다. 우리는 과정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 본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으로 잘못 넘겨짚는다.

근육에 가까운 것

창의성은 근육에 가깝다. 쓸수록 강해지고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연습하면 나아지고 오래 방치하면 무뎌지는 체력처럼, 창의성도 계속 써야 유지되는 능력이다.
창의성은 근육에 가깝다

그렇다면 창의성의 정체는 무엇에 더 가까울까. 여기 흥미로운 비유가 하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몸을 단련하는 일과 닮았다는 관점이다. 연습하면 강해지고,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꼭 체력처럼.

이 비유가 왜 쓸모 있냐면, '재능이냐 노력이냐'라는 이분법을 아주 깔끔하게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근력을 떠올려 보자. 사람마다 타고난 근육량과 회복력이 다르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근육은 타고나는 거니까 운동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출발점이 다르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훈련하면 달라진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창의성도 똑같다. 감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곧 '훈련해도 소용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콧과 레리츠, 멈퍼드가 70여 건의 창의성 훈련 연구를 종합한 결과, 잘 설계된 훈련은 창의적 수행을 꾸준히 끌어올렸고 그 효과는 여러 분야·환경·대상에 걸쳐 나타났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이야기는 반대편에 있다.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는 것이다. 창의성은 한 번 받으면 평생 가는 자산이 아니다. 계속 써야 유지되는 상태에 가깝다. 오랫동안 반복 업무만 해온 사람이 "나는 이제 창의성이 없어졌다"고 느낀다면, 그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근육을 너무 오래 쉬게 두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스콧·레리츠·멈퍼드가 70여 건의 창의성 훈련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 잘 설계된 훈련은 창의적 수행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그 효과는 여러 분야·환경·대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훈련은 창의성을 높인다

'재능 서사'가 편리한 이유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토록 재능 이야기에 끌릴까. 여기엔 은근한 심리적 편의가 숨어 있다.

창의성을 타고나는 재능이라고 못 박아두면,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책임에서 풀려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라는 말은 꽤 훌륭한 면죄부다. 시도하지 않아도, 실패하지 않아도,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럴듯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재능론은 게으름을 겸손의 언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해준다.

반대로 창의성을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불편한 책임이 되돌아온다. 창의적이지 못한 결과는 이제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게 된다. '연습이 부족해서', '환경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아서'가 된다. 이 전환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소수의 천재에게 기대는 회사는, 그 천재가 떠나는 순간 무너진다. 반면 창의성을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이자 협업의 산물로 이해하는 조직은, 그것을 시스템으로 설계할 수 있다. 충분한 시행착오를 허용하는가. 아이디어가 서로 오가는 통로가 있는가. 실패한 시도를 처벌하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이 '누구를 뽑을까'보다 앞서는 질문이 된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창의성을 근육처럼 다루는 네 가지 원칙. 첫째 번뜩임을 기다리지 말고 양을 쌓아라, 둘째 규칙적으로 자주 써라, 셋째 고독을 신화로 만들지 말고 생각이 부딪히는 자리에 서라, 넷째 출발점의 차이에 발목 잡히지 말라 — 훈련하지 않는 재능은 훈련하는 평범함에 따라잡힌다.
창의성 근육 단련 4원칙

창의성이 근육이라면, 다루는 방식도 근육을 다루듯 해야 한다. 근육을 다루는 방식은 네 가지다.

첫째, 번뜩임을 기다리지 말고 양을 쌓아라. 쓸 만한 아이디어 하나는 대개 시원찮은 아이디어 여러 개 뒤에 온다. 창의성 연구자 딘 사이먼턴(Dean Keith Simonton)이 '동등 확률 법칙(equal-odds rule)'으로 정리했듯, 걸작의 수는 결국 시도한 총량을 따라 늘어난다 — 평생 5만 점 안팎을 쏟아낸 피카소가 그 극단의 사례다. 유레카를 목표로 삼는 대신 시도의 총량을 목표로 삼는 편이, 실제로는 더 창의적인 결과에 가깝다.

걸작의 수는 시도한 총량을 따라 늘어난다는 딘 사이먼턴의 동등 확률 법칙. 평생 약 5만 점을 쏟아낸 피카소가 그 극단의 사례로, 수많은 시도 중 극소수가 걸작이 된다.
양이 걸작을 만든다

둘째, 규칙적으로 써라. 창의성은 몰아서 쓰는 것보다 자주 쓰는 것에 반응한다. 매일 짧게라도 낯선 문제를 붙들어 보고, 익숙한 방식을 일부러 한 번 비틀어 보는 것. 이것이 근력 운동으로 치면 반복 세트에 해당한다.

셋째, 고독을 신화로 만들지 말라. 키스 소여가 『Group Genius』에서 정리했듯, 좋은 아이디어의 상당수는 남의 생각과 부딪히면서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 혼자만의 천재성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 생각이 오갈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가져다 놓는 편이 낫다.

넷째, 출발점의 차이에 발목 잡히지 말라. 누군가는 분명 더 유리한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훈련하지 않는 재능은, 훈련하는 평범함에게 따라잡히곤 한다. 이건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기보다, 창의성 훈련 연구가 반복해서 가리키는 방향에 가깝다.

질문을 바꾸면 답이 바뀐다

사실 "창의성은 타고나는 재능인가, 길러지는 능력인가"라는 질문에는 함정이 하나 있다.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강요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약간의 타고난 차이 위에, 훨씬 더 큰 훈련의 여지가 놓여 있다.

그러니 더 나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근육은 쓰는 사람의 것이 된다. 창의성도 다르지 않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