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은 뜨거웠는데, 왜 회사는 그대로일까

포스트잇으로 벽이 가득 찼다. 팀은 밤늦게까지 아이디어를 붙였다 뗐다 했다. 발표날의 공기는 정말 뜨거웠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보면, 그날 쏟아진 아이디어 중에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로 살아남은 건 거의 없다. 많은 회사가 겪는,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디자인씽킹은 IDEO, 스탠퍼드 d.school 같은 기관들이 '혁신의 표준 도구'라며 앞장서 밀어 올린 방법론이다. 그런데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회사가 유독 많다. 모비우스 컨설팅의 매니징 파트너이자 디자인씽킹 전문가인 하비에르 로드리게스(Xavier Rodríguez)는 2024년 한 글에서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진단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경우, 실패하는 것은 디자인씽킹이 아니라 그 프레임워크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 자비에르 로드리게스, 모비우스 컨설팅

말하자면 도구가 무능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도구를 쓰는 법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두 편의 현장 분석을 바탕으로 디자인씽킹 실패 이유를 하나씩 뜯어본다. 잘나가던 프로젝트가 왜 회사 안에서 겉돌기만 하는지, 그 진짜 원인을 짚어 보자.

디자인씽킹이 회사 안에서 겉도는 일곱 가지 실패 이유 — 포스트잇 흉내에 머물기,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과 사랑에 빠지기, 얕은 인사이트, 고객 부재,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구조, 만들어지지 않는 창의성, 선형 모델에 갇혀 시스템을 놓치기.
디자인씽킹이 헛도는 7가지 이유

첫째, '포스트잇 자세'에 머문다

가장 흔한 함정부터 보자. 디자인씽킹의 핵심은 공감(empathy), 문제 정의, 아이디어 발상, 프로토타이핑이다. 그런데 이 알맹이는 이해하지 못한 채, 포스트잇 붙이기와 스티커 투표 같은 겉모습만 흉내 내는 경우가 많다. 조직을 실제로 바꾸는 방법론이 아니라, 그저 예쁘게 보이려는 겉치레 — 로드리게스의 표현으로는 '예쁜 벽지(colourful wallpaper)' — 로 소비되는 것이다.

디자이노레이트(Designorate)를 운영하는 디자인 연구자 라피크 엘만시의 분석도 같은 지점을 짚는다. 스티키 노트, 카드 소팅,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은 어디까지나 발상을 돕는 수단일 뿐이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문제 공간과 해결 공간을 함께 탐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숙련된 퍼실리테이터와 경험 있는 참가자가 없으면, 이런 세션은 결국 시간만 허비하는 '무의미한 회의'로 끝나 버린다고 엘만시는 말한다.

둘째,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과 사랑에 빠진다

많은 팀이 혁신 프로세스를 시작할 때, 이미 '정답을 손에 쥔 채' 출발한다. 로드리게스는 여기에 제동을 건다. 초기 단계에서는 해결책부터 떠올리려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대안이 눈에 들어온다.

조직 문화 차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회사들은 문제 공간을 충분히 파헤치기도 전에 곧장 해결 공간으로 건너뛰려 한다. 하지만 문제를 덜 이해한 상태에서 나온 해결책은,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결국 엉뚱한 곳을 겨냥하게 된다.

초기 단계에서는 해결책부터 떠올리려는 마음을 멈추고 문제 공간을 충분히 탐색해야 한다. 문제를 덜 이해한 상태에서 해결 공간으로 성급히 건너뛰면,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해결책도 엉뚱한 곳을 겨냥하게 된다.
문제 공간 먼저, 해결 공간은 나중

셋째, 진짜 인사이트를 캐지 않는다

공감 단계를 설문조사 몇 개나 얕은 여정 지도(journey map)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강력한 통찰은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로드리게스는 심층 에스노그래피 인터뷰, 상대를 곁에서 따라다니며 지켜보는 섀도잉(shadowing) 같은 꼼꼼한 관찰에서 통찰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정작 고객 자신도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욕구가 있는데, 이런 방법이 아니면 그걸 붙잡을 수가 없다.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사실과 통찰을 '얻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설문조사 몇 개나 얕은 여정 지도로 데이터를 수집한 것은 통찰을 얻은 것과 전혀 다르다. 진짜 통찰은 심층 에스노그래피 인터뷰와 섀도잉 같은 꼼꼼한 관찰에서 나오며, 고객 자신도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욕구는 그렇게만 붙잡을 수 있다.
'수집했다'는 '얻었다'가 아니다

넷째, 정작 고객이 그 자리에 없다

좀 역설적이다. '고객 중심'을 그렇게 외치는 프로젝트인데, 막상 그 안에 실제 고객이 빠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발표 자리에도, 의사결정 단계에도 사용자가 보이지 않는다. 방법론의 심장이라는 고객이, 정작 실제 과정에서는 배제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이 제품을 비판하면, 이해관계자들은 공격받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대신, 오히려 고객을 설득하려 든다. 로드리게스의 한마디가 뼈아프다.

다섯째,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심리적 안전감과 퍼실리테이션이 부실하면 어떻게 될까. 로드리게스에 따르면, 협업으로 아이디어가 자라는 게 아니라 가장 직급이 높거나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그대로 결론이 되어 버린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충분히 섞이지 않은 팀은, 늘 하던 회의를 또 반복하고 늘 나오던 뻔한 해결책을 다시 꺼낸다. 심지어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조차, 조직에 깔린 두려움이나 낮은 야망 탓에 제안이 지나치게 소심하고 밋밋해진다.

여섯째, 디자인씽킹은 창의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꼭 짚어야 할 오해가 하나 있다. 디자인씽킹만 도입하면 조직에 창의성이 마법처럼 생겨날 거라는 기대다. 이에 대해 엘만시는 단호하다. 창의성은 여전히 우리가 그 작동 원리를 잘 모르는 재능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씽킹이 하는 일은 딱 여기까지다. '창의성이 가치로 전환되도록 조직화된 길을 제공'할 뿐, 없던 창의성을 새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디자인씽킹은 없던 창의성을 새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창의성은 여전히 작동 원리를 잘 모르는 재능이며, 디자인씽킹은 그 창의성이 가치로 전환되도록 조직화된 길을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여전히 꼭 필요하다.
창의성을 만들지 않고, 길을 낸다

그래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여전히 꼭 필요하다. 엘만시의 표현대로, 아이디어를 이끄는 사람은 대개 가장 뛰어난 디자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방법론 하나 배웠다고 모두가 똑같이 창의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론으로 방법론을 아는 것과, 우리 조직의 맥락에서 실제로 굴려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코스를 수료하는 것보다, 실전과 조직 문화가 훨씬 중요하다.

일곱째, 선형 모델을 믿고 시스템을 놓친다

대부분의 디자인씽킹 프레임워크는 깔끔한 단계별 직선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엘만시는 실제 디자인이 그렇게 매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훨씬 순환적이고 반복적이며, 생각은 단계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 그래서 도구의 순서를 경직되게 따르는 데 매달리는 순간 — 로드리게스가 '도구의 폭정(tyranny of the tools)'이라 부른 상태 — 고객은 오히려 중심에서 밀려난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엘만시가 강조하듯, 해결책은 진공 속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가득한 복잡한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제품은 내부와 외부의 여러 요소와 얽혀 있다. 이 시스템 역학을 무시하면, 결국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게 된다. 한때 유리·금속의 대안이던 플라스틱 병이 오늘날 더 큰 환경 문제가 된 것처럼.

그래서,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나

두 분석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결론은 분명하다. 디자인씽킹은 여전히 강력한 혁신 도구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실행이다. 잘나가던 프로젝트가 회사 안에서 겉도는 걸 막고 싶다면, 최소한 이것부터 점검해 보자.

워크숍의 열기를 진짜 성과로 바꾸려면 다섯 가지를 점검하라 — 문제부터 사랑하기, 진짜 고객을 결정 자리에 앉히기, 심리적 안전감 설계하기, 도구가 아니라 맥락에 맞추기, 빠르고 값싸게 틀리기.
워크숍을 성과로 바꾸는 5가지 점검
  • 문제부터 사랑하기 — 초기엔 해결책을 잠시 미뤄 두고, 문제 공간을 충분히 파헤친다.
  • 진짜 고객을 자리에 앉히기 — 설문 대신 관찰과 심층 인터뷰로, 그리고 의사결정 자리에 실제 사용자를.
  • 심리적 안전감 설계하기 — 직급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이기는 판을, 퍼실리테이터가 만든다.
  • 도구가 아니라 맥락에 맞추기 — 답이 이미 명확하거나 과거 데이터로 충분한 문제라면, 디자인씽킹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 빠르게, 싸게 틀리기 — 프로토타입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중에 크게 실패하는 것보다, 지금 값싸게 틀리는 편이 훨씬 낫다.

디자인씽킹은 불확실하고 반복적인 과정을 거치며, 사람 중심의 해결책을 창의적으로 찾아 나가는 방법이다. 성공의 조건은 방법론을 외우는 데 있지 않다. 그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쳐 줄 조직 문화를 만들며, 실제로 연습하는 것에 있다. 워크숍의 열기를 진짜 성과로 바꾸는 일은, 포스트잇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출처 · 참고

참고 문헌

이미지 출처